아내와의 관계가 점점 안정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하던 어느날 나는 회사일로 집 근처의 거래처에 잠시 나왔다가 잠깐 집에 들어갔다. 아내의 얼굴이나 보고 갈 심산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요즘들어 통 외출도 않던 아내가 하필이면 그날따라 집을 비우고 있었다. 마침 장모님이 나를 보고는 놀라는 표정을 지어 보이신다.
<자네가 이 시간에 왠일인가?>
<네, 잠깐 요 근처에 일이 있어서 나왔다가 들렀어요.>
<으응.... 그렇구만! 그럼 전화라도 하고 오지...>
왠지 장모님의 표정이 이상해보였다. 내게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았다.
<집사람 어디 갔어요?>
<으응? 은서? 응, 아까 장좀 본다고 나갔네... 금방 들어올걸세...>
왠지 장모님의 말투가 평소때와는 좀 다르게 보였다. 하지만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예... 그럼 집사람 오면 저 왔다 갔었다고 말좀 해주세요. 전 다시 회사 가봐야해서요....>
<으응, 그러게나! 얼른 가보게...>
내가 다시 나간다는 말에 장모님의 얼굴이 안도의 표정을 짓는 것처럼 보이는건 내 착각이었을까? 집을 나서면서도 왠지 모르게 마음이 찜찜했다. 회사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며 출발준비를 하는 순간 내 머릿속을 무언가가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나는 출발하려던 차의 시동을 다시 끄고는 황급히 핸드폰을 꺼내들고는 1번을 누르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내 핸드폰에 1번은 아내로 되어있었다. 곧 아내의 핸드폰번호가 뜨더니 곧 슬픈 음률의 통화대기음이 흘러나온다. 바꾼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처음 들어보는 음률이었다. 원래 아내는 기분에 따라 휴대폰에 밝은 음률의 통화대기음을 설정해놓을때도 있었고 슬픈 음률의 통화대기음을 설정해놓을 때도 있었다. 아내의 휴대폰에서 슬픈 음률의 통화대기음이 흘러나오자 왠지 기분이 나빠졌다. 지가 슬플게 뭐가 있다고 이렇게 슬픈 음악으로 통화대기음을 설정해 놓는단 말인가! 잠시 불쾌한 기분에 젖어있는 사이 곧 통화대기음이 끊기더니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보세요?>
나의 심란한 마음과는 달리 침착한 아내의 목소리가 핸드폰 너머로 들려왔다.
<어, 나야!>
<아, 당신? 어쩐일이에요?>
<어쩐일은... 그냥 궁금해서! 근데 당신 지금 어디야?>
<지금요? 어디긴... 그냥 집이에요....>
순간 머리털이 쭈뼛해진다. 온몸이 떨려왔다.
<어, 알았어!>
나는 대충 대답하고는 서둘러 핸드폰을 끊었다. 눈앞이 아찔해지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도대체 아내는 왜 내게 거짓말을....
잠시 마음을 진정시킨 나는 곧 차에 시동을 걸었다. 떨리는 손으로 핸들을 잡고 차를 출발시켰다. 이 상황에서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는 명확했다. 지난번 사내의 원룸을 향해 차를 몰았다. 어떻게 운전을 했는지 기억도 못할만큼 급하게 차를 몰아 순식간에 지난번 사내의 원룸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나는 황급히 사내의 원룸으로 올라가서는 현관문 앞에서 가만히 심호흡을 한번 했다. 속으로는 제발 내 의심이 틀리기를 바라고 있었다. 벨을 누를까 하는데 마침 현관문과 현관문의 문틈새가 엄지손가락 정도의 간격만큼 열려져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아마도 누군가가 들어가면서 문을 꽉 안 닫은채로 놔두고 그냥 들어간 모양이었다. 살며시 현관문의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었다. 문이 약간 뻑뻑한 느낌이 들었다. 방금전 문이 완전히 닫혀지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인 듯했다. 나는 소리가 혹시나 소리가 날까봐 더욱 조심스레 문을 열고는 살며시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선 내 눈에 제일먼저 낯익은 신발하나가 들어왔다. 여자의 하이힐.... 아내의 것이었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