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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새살림 - 13
최고관리자 0 149,546 2022.10.21 15:37
야설닷컴|야설-아내의 새살림 - 13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어제 말도 않고 회사로 복귀하지 않은 덕에 들은 상사의 호된 꾸지람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로지 새벽에 있었던 꿈과 같았던 아내와 사내의 정사 장면과 새벽에 있은 사내와의 대화만이 귓가에 맴돌고 있었다. 


<형님, 형수님은 너무 아름다운 여자입니다. 그런 여자를 형님 혼자 독차지하고 골방에만 가둬 두겠다는건 너무 심한 욕심입니다.> 


사내의 어처구니 없는 말에 나는 낮게 으르렁거렸다. 


<뭐? 야, 개새꺄! 너 그걸 말이라고 하는거냐? 그녀는 내 아내야!> 

<헤헤, 물론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형님은 왜 자는 척하면서 저와 형수님의 모습을 훔쳐보신 겁니까? 아마도 꼼짝하실 수 없었겠죠? 그녀가 다른 사내의 품에서 기뻐하는 것을 보면서 형님도 어렴풋이나마 그것을 느끼신겁니다. 그녀는 한 남자의 품속에서는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요! 그렇지 않습니까? 만약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신 다면 그건 형님이 그녀를 사랑하지 않고 오로지 소유물로만 생각하고 있기에 그녀의 행복따위엔 전혀 관심도 없는 무능하고 이기적인 남편이거나 아니면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둘 중에 하나일겁니다.> 


사내는 무능하고 이기적인 남편이란 말에 더욱 액센트를 주며 강조를 한다. 그말은 내 가슴을 비수처럼 후벼팠지만 분하게도 나는 사내의 말에 꿀먹은 벙어리처럼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사내의 말은 별로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남편이 아닌 다른 사내의 품에 안겨 기뻐하는 아내를 보자 이상하게 힘을 쓸 수가 없었다. 그런 아내가 무척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더욱 이상한 것은 처음 아내의 외도를 알았을때보단 분노와 질투의 감정이 조금은 더 옅어졌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들이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분명 약간이나마 희석된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자리엔 이상한 흥분의 감정이 스멀스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귓가에 너무 달콤하게 속삭이는 것이다. 너의 아내는 지금 딴 남자의 품에 안겨 너무 기뻐하고 있다고... 아내를 사랑한다면 아내의 기쁨을 인정해 주라고...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고 말이다. 내심으로 그런 이상한 유혹과 힘겹게 싸우고 있는 마당에 사내가 잔인하게도 결정타를 먹이는 것이었다. 아내를 기쁘게 해 줄 수 있는 수컷은 바로 자신뿐이라고... 


한동안 침묵이 흘렀고 아내는 욕실 안에서 무얼 하는지 꽤 오랜시간 동안 샤워기에서 물이 흘르는 소리만 들려오고 있었다. 나는 이미 사내에게 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남편으로서의, 수놈으로서의 자존심이 굴복을 인정하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개새끼! 아직도 덜 맞았나 보구만. 어디서 씨도 안 먹히는 소리를 지껄이고 앉아있어!> 


내가 정말로 주먹을 쥐며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그는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없이 태연히 입을 연다. 


<형님, 그몸으론 일어서시는 것도 힘드실텐데요. 물론 꼭 때리셔야 한다면 얼마든지 맞아드리죠! 저도 그정도가 무서웠다면 애초에 시작도 안 했습니다. 그리고 형수님을 생각하셔야죠. 지금 형님이 난동을 부리시면 그녀도 여태까지 형님이 모든걸 훔쳐봤다는 것을 알겁니다. 그러면 아마도 그녀는 떠나기 싫어도 떠나야 할 겁니다. 저도 그런 것은 바라지 않는다구요!> 


나는 사내를 노려보았다. 주먹을 부르르 떨고만 있을뿐 그 주먹을 사내에게 뻗을수는 없었다. 완벽한 나의 패배였다. 그때마침 아내가 욕실에서 나오려는 듯한 기척이 들려왔다. 그러자 사내가 재빨리 여태까지 있었던 일은 나와 자신만의 비밀로 하자며 얼른 제자리로 돌아간다. 나 역시 나도 모르게 얼른 아까의 자세로 돌아가 자리에 다시 누워 멍하니 눈을 감고 있었다. 마치 잘못을 하다 부모에게 걸릴뻔한 어린아이의 마음처럼 심장이 고동치고 있었다. 도대체 내가 왜 무엇을 두려워해야 하는 지도 모른채 아내에게 무언가를 들키지나 않을까 조바심을 내고 있는 것이었다. 가만히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지금 잘못한게 누군데 내가 이러고 있나하는 자조였다. 잠시후 욕실문이 열리더니 아내가 나온다. 그런 아내에게 사내가 다가가더니 가볍게 수작을 건다. 그리고 아내가 낮게 사내의 수작질을 거절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 이러지 말래두! 이러다 우리 그이 깨겠어!> 

<흐흐흐, 깨긴 뭘 깬다구 그래! 아 그리구 좀 깨면 어때서! 우리 은서는 내꺼다라고 말해주면 되지!> 

<아유! 아주 미쳤어, 미쳤어! 그게 말이나 돼? 그리고 그러다 또 아까 낮처럼 두들겨 맞을라구?> 

<킥킥, 그러면 좀 두들겨 맞지 뭐! 난 자기 위해서라면 그것보다 더한것두 할 수 있는걸! 그리구 이제 형님은 그렇게 못해.> 

<아유, 정말 말이나 못하면 밉지나 않지!그리고 그건 또 뭔소리야? 그렇게 못한다니? 우리 그이가 저래 보여도 성질이 급해서 아마 우리가 또 이런거 알면 자긴 오늘 뼈도 못추릴걸!> 

<킥킥, 아 걱정 말래두! 다 이유가 있거덩!> 

<이유? 그게 뭔 소리야?> 

<흐흐, 너무 많이 알라구 하지 말구 어서 일루 좀 와봐! 우리 은서좀 안아보자!> 

<어머, 어머머, 아이, 진짜 미쳤나봐... 자꾸 그러지 말라니깐! 정말 나 가슴 졸여서 죽는꼴 볼라구 그래? 안그래두 불안해 죽겠구만!> 

<아 걱정할거 없다니깐! 나만 믿으면 된다니깐!> 

<순 바람둥이 같은놈을 믿긴 뭘 믿어?> 

<흐흐흐, 맨날 바람둥이같은놈, 바람둥이 같은 놈 하면서 정작 그 바람둥이 거기만 보면 왜 그렇게 몸이 뜨거워질까?> 

<어머머! 정말 못하는 말이 없어! 내가 언제 그랬다고 그래?> 

<그래? 그럼 어디 한번 그런가 안 그런가 또 검사좀 해볼까...> 

<꺅! 싫어. 나쁜놈! 그러지 말래두... 안돼! 우리 신랑 깬다니깐... 아유, 정말 미쳤나봐~> 


능청스런 사내의 말에 아내는 기겁을 하며 낮게 비명을 지르고는 뒷걸음질치고 있었으며 사내는 그런 아내를 내가 들으라는 듯이 더욱 추잡스럽게 희롱하고 있었다. 그런 두 년놈의 수작질을 듣고 있자니 속에서 분통이 터져 나온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니 어쩔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오히려 나는 내가 깨어 있다는 것을 아내에게 들킬까봐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잘못을 저지른 쪽은 당당하고 피해를 본 쪽이 오히려 더 전전긍긍하고 있는 꼴이었다. 어쩌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됐는지 쓴웃음이 나왔다. 그러고보니 새삼 내가 사내의 심리전에 휘말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의 심리를 훤히 꿰뚫고 있음은 물론이고 그것을 치밀하게 이용까지 하는게 아닌가 싶었고, 아내도 사내의 그런 치밀한 심리전 앞에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남편이 뻔히 깨어있는 것을 알면서도 그 남편의 면전 앞에서 태연히 그 남편의 아내를 희롱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아주 뻔뻔하기까지 한 사내와 그 광경을 두 눈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는 남편... 정말 나 스스로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이 잔혹한 현실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한가지 최선의 방법은 어서 빨리 깊은 잠에 빠져드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잠에서 한 숨 자고 일어나면 이 모든 것이 꿈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나의 귓가에 사내와 아내의 음성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고 베개는 무언가 모를 축축하고 뜨거운 액체로 젖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비참하게 깊은 심연속으로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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