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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를 잘한다는게 뭘까?
야설닷컴 0 22,195 05.24 11:01

야설:이제야 인정하는 것이지만 나는 그동안 섹스에 대해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다. 비록 오르가즘을 느끼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열심히 여성상위 체위에서 온갖 상상과 노동을 동원한 끝에 얻어낸 것이지 파트너의 도움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누구와 섹스를 하더라도 어지간하면 오르가즘에 도달했고, 내 노력에 의한 것이었으므로 섹스를 마치고 난 상대방이 전혀 고맙지도 사랑스럽지도 않았었다. 그래서 나는 한번 자고 났더니 사람이 달라 보인다든가 아니면 품에 몇 번 안기니 마음이 가더라 따위의 얘기를 믿지 않았었다. 어떤 남자를 안아도 다 거기서 거긴데 왜 달라 보이고 마음이 가냐는 생각을 했었다.


 


몇 개월 전 나는 우연히 한 남자와 섹스를 할 뻔 했다 (할 뻔이라고 말한 건 삽입까지는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날은 그와 저녁 식사 약속이 있었는데 내가 감기 기운이 있어서 만나지 못하겠다고 전화를 한 것이 시발점이었다. 그는 약을 사 들고 집 앞으로 왔으며 정말로 약만 건네고 다시 시동을 거는 그에게 묘한 호기심이 일어서 나는 집에 와서 차라도 한잔이라는 구태의연한 멘트를 날렸다. 남자는 처음에는 거절하다가 내가 많이 아프지 않으니 괜찮다는 설득에 집으로 들어왔다. 몇 번인가의 데이트에서 나는 그에게 어느 정도 호감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날 밤 나는 그와 섹스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매우 어처구니없게도 그가 사온 감기약을 먹고 보드카 토닉과 맥주를 여러 잔 마셨다 (이 과정에서 술을 마시지 못하는 그는 오렌지 주스를 마셨다).


 


소파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다가 내 자세는 점점 그에게 기대는 형태를 취하게 되었고 마침내 그는 똑바로 앉아있고 나는 옆으로 누워서는 다리를 그의 허벅지 위에 올려놓고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나는 그가 어서 허벅지를 쓰다듬기를 그러다가 몸을 틀어서 나에게 키스를 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고 지친 나는 침대로 가자며 노골적으로 유혹을 했다. 그러나 그날 밤 결국 우리는 애무까지는 갔었지만 그는 끝내 섹스를 하지는 않았었다. 그가 전략적으로 나를 피했는지 어쨌는지는 알 도리 없지만 아무튼 나는 그날 아주 색다른 경험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쩐지 그를 안고야 말겠다는 의지에 불타게 되었다. 사실 혼자 사는 여자가 남자를 초대했고 침대에 함께 눕기까지 했는데 여자를 안지 않고 가만있을 남자가 대체 몇이나 될까?


 


그렇게 데이트를 계속하던 어느 날 그는 내게 말했다. 집에서 자고 가도 되겠냐고.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그러라고 했다. 그때는 이미 내가 그와 함께 섹스를 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접은 이후였었다. 왜냐면 그 이후로도 몇 번이나 그는 내 집에 올 기회가 있었지만 안고 키스하고 쓰다듬고 이상으로는 진도를 나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날. 그는 각오를 하고 온 것이었다. 나와 섹스를 하겠다고 말이다. 그 이전에 언제나 아쉬운 상태에서 스톱을 외쳤던 그이기에 나는 그가 쓰다듬기만 해도 이미 온 몸이 마비될 지경이었다. 거기다 그는 어찌나 정성스럽게 애무를 하던지 나는 태어나서 그렇게 열심히 섹스 이전의 사전작업을 하는 남자를 처음 봤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애무를 해 주고 나서야 비로서 그는 내 안으로 들어왔다.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나는 그가 내 안에 들어오자마자 오르가즘을 느꼈고 그건 여태까지 내가 위에 올라가서 낑낑거리며 억지로 도달한 오르가즘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섹스가 끝난 다음 나는 그에게 물었다.


 


“ 섹스 할 때 어떤 생각으로 해요? ”


 


그가 말했다.


 


“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다룬다는 생각을 해요 ”


 


과연. 그 말이 정답이었다. 그는 섹스하는 내내 나를 최고의 여자로 대해 주었고 그 정성스러움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었다. 다른 남자들 같으면 대충 키스 몇 번 하고 가슴 좀 빤 다음 바로 여자의 성기를 만져보고 대충 젖었다 싶으면 전투태세를 갖추고 쳐들어오기 바쁜데 그는 아주 오래오래 시간을 들이고 정성을 다해 내 몸의 여기저기를 기쁘게 해 주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내가 여태까지 만난 남자들 중에서 가장 섹스를 잘 하는 남자를 만났다는 생각을 했다.


 


흔히 남자들이 섹스를 잘 한다고 생각하는 것의 기준은 여자들과 많이 다르다. 그들은 일단 페니스를 자기 손으로라도 딱딱하게 만든 다음 여자의 몸 속으로 거칠게 들어간다. 그리고는 마찰음이 들릴 정도로 좌우 전후로 페니스를 움직이며 또 중간 중간 자세를 바꾼다. 하지만 그들이 자세를 바꿀 때의 표정을 보면 자신이 좋아서 바꾸는 것 같지는 않다. 어디까지나 여자를 만족시켜 주려고, 또 좀 더 깊이 강하게 삽입하고 거칠게 움직임으로써 여자로부터 신음소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말이다. 그 아래 누워있는 여자들은 정말 아무 생각이 없다. 아무리 거칠게, 깊게, 자세까지 이리저리 바꿔가면서 해도 이건 무슨 스포츠를 하는 건지 섹스를 하는 건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남자들이 섹스를 잘 한다는 것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이유는 포르노 때문인지도 모른다. 포르노 배우들은 절대 섹스하기 전에 오래 애무하지 않는다. 그저 가슴 몇 번 주무른 다음 바로 페니스를 세워서 여자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신음소리를 내도록 만든다. 남자들은 그게 정말로 좋은지 모르겠지만 그건 내가 남자가 아니라 잘 모르겠고, 여자의 입장에서만 말하자면 그것만큼 시시하고 뻔한 섹스는 없다. 그건 스포츠지 섹스가 아니다. 물론 아주 극도로 흥분한 상태에서 미처 애무를 할 겨를도 없이 거칠게 하는 섹스도 있을 수 있지만 별로 흥분하지도 않았고 애무를 할 시간은 충분한데도 그렇게 하는 것은 정말이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섹스일 뿐이다.


 


예전에 자신이 매우 섹스를 잘 한다는 착각을 하고 있는 남자와 섹스를 한 적이 있었다. 그는 그야말로 내 위에서 기인열전을 펼쳤고 온 몸을 땀으로 흥건하게 적시면서 정말 열심히 피스톤 운동을 했었다. 애무 시간은 기껏 2~3분도 안되었지만 삽입하고 사정하기까지의 시간은 무척 길었다.


 


그가 자신이 섹스를 잘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러했다. 우선 자신의 페니스가 남들보다 크며 (사실 나는 큰지도 잘 모르겠던데) 또 섹스를 한때 몇 분 간격으로 온갖 체위를 다 구사하며, 결정적으로 사정하고 싶은 걸 용케도 참아내어 무척 긴 시간 동안 피스톤 운동을 견뎌낸다는 것이었다. 섹스를 끝내고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면서 너무도 자랑스러운 혹은 나한테 홀딱 반하겠지? 라는 표정을 짓는 그에게 차마 말은 못했지만 나는 그 날의 섹스를 내 생애 최악의 섹스로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나는 그 후 여러 번 섹스를 조르는 그와 다시는 섹스를 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좋으면서도 내숭을 떤다거나 아니면 자기가 너무 잘하는 나머지 내가 깊이 빠질까봐 두려워서 거부한다고 느끼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모르고 한번은 했지만 알고는 두 번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섹스. 그게 바로 그 남자와의 섹스였다. 그 남자는 섹스를 하기 전에 여자들이 자기와 한번 자고나면 떨어질 줄 모른다는 둥. 일단 자신과 연애를 한번 하고 나면 사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둥 별별 소리를 다했다. 대체 어떤 이상한 여자들이 그에게 섹스를 잘 한다고 칭찬을 해 줬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그는 최악의 상대였다.


 


내가 생각하기에 섹스는 스포츠가 아니다. 섹스는 몸으로 쓰는 시와 같은 것이다. 상대방에 대해 알아가고 또 상대방의 저 깊은 곳에 위치한 기쁨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그런 행위가 어떻게 삽입과 심한 피스톤 운동 그리고 끊임없는 자세 바꿈, 사정만으로 되는 것이겠는가. 남자도 여자도 상대방을 정말로 소중하다고 생각하고 다루는 게 중요하다. 여태까지의 얘기에는 남자들에게 애무를 받는 것들만 적혀있지만 사실 여자들도 그냥 시체처럼 가만히 누워 있으면서 신음소리나 몇 번 질러주면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여자도 마찬가지로 남자들의 몸을 아끼고 사랑하고 쓰다듬고 애무를 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 절정의 순간에는 다소 거칠어진다 하더라도 섹스는 전반적으로 거칠고 씩씩대는 스포츠가 아니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여자로부터 정말 섹스를 잘 하는 남자라는 소리를 듣고 싶거들랑 당장 태도부터 바꾸길 바란다. 하루에 몇 번을 하는지 또 할 때마다 얼마나 깊게 삽입을 하고 빨리 페니스를 넣었다 뺐다 하는지에 집착하는 건 무식한 변강쇠나 하는 짓이다. 섹스는 즐기고 느끼고 행복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말 그러고 싶다면 우선 상대방의 몸부터 사랑하고 또 소중하게 다뤄주길 바란다. 내가 아는 한 섹스를 잘 한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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