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공~6공 시절 군대 이야기다. 학교에서 맨날 데모만 하다가 위수령이 내리고 학교가 문을 닫고 학생과외가 금지되고, 책도 팔고 보리차도 팔고, 막노동도 하다가 결국은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군에 입대를 했다. 2년이나 휴학한 후에 입대를 해서인지, 여학생들도 환송을 안해주었고, 사귀던 여자친구도 없었다. 자대 배치를 받은 곳은 후방의 중소도시...제법 별들이 몇 있는 지원부대가 모여있다. 고참이 종교생활을 교회와 법당과 성당 중에서 골르라 한다. 참고로 고참은 교회 다닌다고 했다. 당연히 교회를 선택했다. 고참은 음대를 다니다 와서 부대내 교회의 성가대 지휘를 맡고 있었다. 당연히 우리 졸병들은 성가대에 참여하여야 하였고, 종교생활 하면서 예배시간에 잠좀 잘려고 생각했던 것이 완전히 어긋나 버렸다. 오히려 30분 먼저 가서 연습을 해야하고, 끝나고도 교회 뒷정리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장교부인들과 여군들이 성가대에 있어서 매주마다 그리운 여인의 향기를 맡을수 있어서 위안이 되었다. 일병이 되자, 고참 행정병이 나를 후임으로 세우고 말년으로 들어갔다. 잡무가 많아 힘은 들었지만, 졸병들이 가장 싫어하는 일석점호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것이 내겐 큰 위안이 되었다. 그리고, 밤에도 일직하사관이나 일직 내무반장이 나를 대신 행정반에 대기시키고 잠자러 들어가곤 했다. 나는 그 시간에 공부도 하고, 편지도 쓰고, 다른 부대에 근무하는 장교친구들과 부대전화로 통화도 하는등 재미난 군생활을 보내게 되었다. 그런데, 몇일전부터 매일 저녁 점호시간이 끝날쯔음이면 묘령의 여인이 전화가 와서 고참 박병장을 바꿔달라고 한다. 외부에서 부대로 전화를 할수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매일밤 이렇게 전화가 오는 여인에 대해 부럽기도 하였지만, 고참의 여자니 잘못 보이면 괜히 낭패다 싶어 잘 대해주었다. 일요일 외출에서 돌아온 박병장이 내게 오더니, 앞으로 전화오면 적당히 둘러대고 바꾸지 말라는 것이었다. 월요일 저녁 점호시간.. [삘릴릴릴리~~~] [통신보안 ○○대 김일병입니다] [박 병장님좀 바꿔주세요] [아! 예~~ 어디십니까?] 평소와 다르게 누구냐고 묻자 당황해하는 듯 했다. [저, ○○대 아닌가요?] [네, 맞습니다. 맞고요~~] [박병장님 안계세요?] [박병장이 두분이신데.....어떤 박병장을 찾으시는 지요?] [박○○병장님이요.] [네, 지금 점호중이라 전화를 바꿀수 없습니다. 점호전에 하시면 안됩니까?] [.....네...알겠어요...] 화요일 저녁 점호전에 전화가 왔다. [박병장님좀 바꿔주세요] [예, 어디십니까?] [저, 여긴 여군대인데요. 박병장님좀 바꿔주세요] [네, 여군대 어떤 분이십니까?] [............] [소속을 밝혀 주십시오] [여..여군대 한하사....ㄴ데요....] [충성!,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수화기를 내려놓고 한참 듬 들이다가 [저, 박병장님 보초근무 나가셨습니다.] [....네, 알..겠..어..요..] 수요일 밤....교회에 다녀왔다. 오늘은 전화가 오지 않는다. 목,금,토...계속 전화가 오지 않는다. 궁금증도 생겼으나, 최고참인 박병장에게 물어볼수도 없는 일이라 그냥 그렇게 잊혀지는 듯 했다. 일요일, 성가대 연습이 끝나고 잠시 쉬는 시간.. 한 아가씨가 나에게 다가와 커피를 권하며 이야기좀 하자고 한다. [누..누구신지?] [안녕하세요? 인사가 늦었네요, 저 여군대 한하사에요] [아!....그..박병장님 찾던......] [쉿! 네, 제가 맨날 귀찮게 전화하던 그 사람이에요. 진작에 이렇게 인사를 드렸어야 하는데...죄송해요] [아..아니...전, 졸병이라....어쩔수가 없었어요....] [알아요, 수욜날 저녁에 박병장님이랑 이야기 끝냈어요.] [아..네...] [앞으로 제가 전화하면 잘 좀 받아 주세요...] [아..예..알겠습니다.] 그렇게 박병장이 제대하기까지 한달동안 전화 심부름을 해 주었다. 박병장이 제대하자 한하사의 전화는 끊어지고, 이제 새로이 내무반장이 된 장병장을 찾는 전화가 또 매일같이 들어온다. 장병장은 성당에 다니는 고로 이건 또 누군지 모르겠다. 분명 여군이리라... 삼일째 되는날 한번 뒤틀었다. [장병장님 지금 순찰 중이십니다.] [방금 전에 통화 했는데요, 점호 끝나고 전화하라고 해서 하는건데...] [그런데 어디시죠?] [여..여긴..여군대예요....] [여군대 어떤분이시라고 전해 드릴까요?] [여..여군대...강하사...ㄴ데요.....] [충성! 여군대 강하사님 전화왔었다고 전해 드리겠습니다.] 그 다음날 장병장이 나를 부르더니 씨익 웃으면서 PX로 데려간다. 성당에서 행사 관계로 강하사가 연락이 오면 잘 맏아주라고 부탁을 한다. 그로부터 한달 정도 장병장과 강하사의 전화 심부름을 했다. 이런식으로 불자인 고참이 내무반장이 되면 법당에서 만난 여군이 전화가 오고, 군대의 3대종교는 사병과 여군하사와의 연애장소로 탈바꿈 하고 있었다. 하지만 졸병들은 감히 꿈도 꿀수 없는 말년 고참만의 특권이었다. 군대서 유일하게 라면과 쏘주를 마음놓고 먹을수 있는곳이 이들 3종교의 관리사병이 있는 곳이다. 대부분 영외에 있어 순찰의 범위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2년차 상병이 되고, 우리부대가 10월1일 국군의날 행사에 차출을 당했다. 성남의 비행장 활주로에서 하루종일 줄맞추어 행진하는 연습을 하고 주말엔 교회에 가서 피로를 풀곤 하였는데, 거기서 한하사를 만났다. 객지에서 고향사람 만난것 처럼 반가웠다. 원래 하사관은 주말에 외출이 가능한데, 그날은 그냥 쉬고싶어서 나가지 않고 교회에 나온것이었다. 그렇게 종종 연락하자면서 내선 번호를 주고 받고서 혜어졌다. 그 후 저녁에 심심하면 전화연결해서 공적인 업무연락과 간간히 사적인 이야기를 조금씩 나누면서 농담도 하는 사이로 발전했다. 하지만 완전 고참이 아니라 눈치는 아직도 많이 봐야 했고, 한하사도 장교와 사귀는 듯한데, 파견근무중이라 무료했던 것 같았다. 두달동안의 파견근무가 끝나고 귀대하니 7박 8일의 위로휴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기차역으로 가서 서울가는 군용열차를 탓는데, 한 아가씨가 어깨를 툭 치는게 아닌가? [어? 한..하사님...충......성...!] [네,충성, 김상병...휴가가요?] [예, 한하사님도?] [네, 전 서울가요...] [어 저도 서울....] 사실 시골에 들러야 하는데, 엉겹결에 서울이라고 말하고 말았다. [그럼 우리 같이 가요...] 하지만, 군용 칸에는 앉을 자리가 없었다. 한하사는 사복을 입었기 때문에 일반석에 가서 자리해도 상관 없지만, 정복을 입은 군인은 일반인칸에 타면 헌병대가 돌아다니면서 잡아가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음 역에서 무조건 내렸다. 그리고 서울 가는 차표를 두장 구입했다. 차표를 구압했기 때문에 상관없다. 애인이랑 여행하는 것처럼 그림이 맞춰졌으니까.. 그렇게 한하사와 편안한 마음으로 맥주와 오징어 땅콩을 씹으면서 밤새 서울로 향했다. 한수경. 22세, 나보다 한살 어렸다. 고등학교를 나와 가정형편이 어려워 구로공단에 취업했다가 여군모집을 보고 응시해서 벌써 4년째 근무중이다. 이제 1년 남짓이면 중사로 진급하고 장기복무를 원하지 않으면 전역하게 된다고 한다. 나도 학교 다니다 휴학하고 군입대한 사연을 이야기 하고, 박병장 이야기를 넌즈시 꺼내 보았다. 사실 박병장과 사귄다든가 한 건 아니었고, 같은 서울출신이라 주말외출시 우연히 동행이 되어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더 이상의 이야기는 피하는것 같아 물어 보지는 않았다. 혹시 사귀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사실은 같이 근무하는 장교 한사람이 대시를 해 와서 고민중이라고 한다. 그런데 ROTC 출신이 그 장교가 아예 말뚝을 박을 생각을 하고 있어서 자기는 군발이 마누라가 되고 싶지는 않아 고민이라고 했다. 그래서 사병 중에서 괜찮은 사람이 있으면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는것 같았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야간 열차는 어느듯 용산역에 도착하였다. 새벽에 내렸지만, 마땅히 아침 일직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용산역 앞에는 삐끼 아줌마들이 자고 가라면서 군발이들의 소매을 잡는다. 나는 아가씨와 같이 가고 있으니 잡지는 않는다. 걷다보니 삼각지 까지 걸었다. 남영역 숙대부근에 해장국집을 찾아 쓰라린 속을 달래려고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