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崔)씨 성에 옥빛 현(玹) 아름다울 수(琇). 최현수라는 이름이면 당신 인생에 조금은 변화가 있을 것이오.” “최현수(崔玹琇)요?” “그렇지. 최현수. 이 이름이면 험난한 인생으로 점철된 당신 사주를 완전히 바꿀수는 없지만 당신 노력에 따라 어느정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오.” “최현수.” 남자가 종이에 써준 이름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중년여인은 새로운 이름을 조심스럽게 되뇌었다. 남자는 다시 부지런히 책을 뒤적이며 손을 꼽아보더니 종이에 또 무언가를 적었다. “토생쌍금(土生雙金)이어도 패가망신(敗家亡身)이지만 쌍토생금(雙土生金)이면 일광춘풍(日光春風)이라.” “.............” “당신 남편의 사주는 나쁜 사주는 아니지만 패가망신할 수 있는 이름을 지은 탓으로 인생이 꼬이고 고난으로 점철된 아주 고단한 삶이었을 것이오. 그러나 당신과 당신 남편의 사주에 맞는 이름으로 바꾸고 당신의 도움이 있다면 따뜻한 봄날에 훈훈한 봄바람이 불어오는 인생을 맞이할 것이오.” “............” 너무나 힘든 인생을 살아온 탓에 거의 자포자기하며 생을 마감하고자 했던 중년여인이었다. 마지막을 생각하고 한강다리를 찾아가던 중년여인은 버스에서 뜻밖의 사람을 만났다. 아무런 계획이나 준비 없이 무작정 고아원을 뛰쳐나온 지 근 30여년 만에 고아원에서 같이 자라던 또래 친구를 만난 것이다. 무척이나 반가워하는 친구와 함께 마지막으로 차라도 한 잔 나누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며 친구가 이끄는 커피숍으로 들어섰다. 원장의 보호아래 고등학교를 마친 친구는 작은 공장에서 프라스틱 제품을 만드는 일을 하면서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산다고 했다. 힘들고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고아원 시절을 생각하면 가족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 큰 행복을 누린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살고 있었다. 한 때 친구 남편이 다니던 직장이 망해서 시련을 겪었지만 누군가의 소개로 이곳 ‘명심철학원’을 찾아왔더니 남편의 몸에 부적을 그려준 뒤로 새로운 직장을 구해서 요즘은 잘 지낸다고 했다. 친구의 얘기를 듣고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모르는 길을 물어물어 찾아온 그녀였다. 사실 처음 들어섰을 때 그저 평범하게만 보이는 남자의 인상 때문에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믿음이 가지 않아서 곧바로 일어서지 않은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기도 했다. 그러나 단순히 사주와 이름만으로 고아였다는 사실 뿐만아니라 험난하게 살아온 자신의 인생 여정을 알아버리자 처음 가졌던 경계심이 조금은 풀렸다. 게다가 가끔씩 자신의 이름이 좋지 않다는 말을 들어왔던 터라 이름을 바꾸어 주었을 때는 속으로 조금은 기분이 좋아졌었다. 그런데 이제는 남편의 이름까지 바꾸면 힘든 삶이 조금은 풀린다고 하니 솔직히 조금 기대가 되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중년여인을 안경너머로 지켜보던 남자가 조용히 그러나 또렷하게 말했다. “당신 남편의 이름을 전(全)씨 성에 터 기(基) 밝을 량(亮)을 써서 전기량으로 바꾸시오.” “전.. 기.. 량..이요?” “전승기는 서로 어울리기 힘든 물과 흙이 섞여있어 유하객살(流霞客煞) 즉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닐 기운이 많은 이름이오. 그러나 전기량이란 이름으로 바꾸면 떠도는 기운을 잠재우고 하늘의 창고를 가까이 하는 천창길운(天倉吉運)의 기운이 트일 것이오. 비록 사주로 인해 많은 재산은 모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나름대로 적지 않은 재산을 모을 수 있을 것이오. 지금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는 될 수 있을 것이오.” 남자가 말한 것처럼 재산이 모인다는 것은 기대하지 않아도 남편이 이름 때문에 떠돌아다니는 것이 이름을 고침으로써 한 곳에 정착할 수 있다는 말에 괜히 기분이 좋아지고 있었다. “부적은........” 중년여인은 자신과 남편의 이름을 남자가 일러 준대로 고치기로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부적에 대해 말을 꺼냈다. “우선 가르쳐준 이름으로 호적을 고치고 한 달 동안 생활해보고 오도록 하시오. 만약 당신과 당신 남편의 생활에 조그만 변화도 없다면 나를 돌팔이라 생각하고 오늘 복채를 되돌려 가시고, 그렇지 않다면 그때 와서 당신 몸에 부적을 그려 넣으면 될 것이오.” “몸에요?” “이미 당신 몸에 문신이 새겨져 있다고 하니 그 문신을 지워야 하지요. 단순히 문신만 지우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문신과 함께 당신 몸에 스며들었던 몹쓸 기운들을 빼내고 부적의 새로운 기운들로 당신 몸을 채워야 합니다.” “...........” “한 달 후 당신이 여기를 다시 찾아올 때는 일주일간 몸을 씻지 않고 세상의 때를 잔뜩 묻히고 와야 합니다.” “예? 깨끗이 씻고 오는 게 아니라 씻지 말고 오라고요?” 몸에 부적을 그려 넣기 위해서 몸을 깨끗이 씻고 오라는 말이 아닌 세상의 때를 잔뜩 묻히고 오라는 남자의 말에 중년여인은 의아함을 느끼고 반문했다. “사람 몸속에 들어있는 못 된 기운을 빼내는 일은 매우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요. 그리고 그 기운들을 빼내는 것은 몸 안에서 밖으로 나와 있는 구멍들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예를 들면 입이나 코 그리고 당신이 부끄럽게 예기했던 거기 즉 당신의 보.지.를 통해서도 나쁜 기운들을 빼내게 됩니다.” “.............” 중년여인은 좀 전에 자신이 부끄럽게 생각하며 간신히 얘기했던 ‘보지’를 남자가 아무렇지 않게 힘주어 얘기하자 살짝 얼굴을 붉혔지만 아무 말 하지 않고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러기 때문에 몸 안에 들어있는 기운들을 한 번에 모조리 빼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피부에 묻어있는 때라도 함부로 떼어내면 안되지요. 특히 당신의 몸에서 가장 큰 구멍이라 할 수 있는 당신의 입과 보.지.는 열흘간 절대로 씻어서는 안돼요.” 남자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매우 엄숙한 표정으로 한마디 한마디에 힘을 주어 얘기했다. 때문에 중년여인은 남자의 입에서 보지란 말이 나와도 그 말에 부끄러움이나 창피함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은연중에 풍기는 남자의 기도에 압도되어 꼭 그렇게 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벌어질 것 같은 느낌으로 남자의 말이 뇌리에 깊숙이 새겨지고 있었다. “오늘은 당신 몸속에 들어있는 불결한 못된 기운들이 얼마나 있는지를 알아보고 일단 그 기운들을 다스려 두어야 합니다.” “지금이요?” “물론 지금이지요. 저 문 뒤쪽에 있는 욕실에 들어가면 다섯 개의 물통이 있습니다. 그 다섯 개 가운데 파란색 물통에 들어있는 물로 몸을 깨끗이 씻고 나오세요.” 남자는 중년여인의 물음에 단호하게 대답하며 뒤 쪽에 있는 철문을 가리켰다. 잠시 머뭇거리는 중년여인을 보고 남자는 다그치듯 쐐기를 박는 말을 하였다. “씻고 나올 때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알몸으로 나와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알몸으로요?” “옷으로 못 된 기운을 가려버리면 가늠하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시간은 한 시간입니다. 그리고....” ".....?" "이 안에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놀라지 마시고 조용히 들어와서 기다려야 합니다." "네." 남자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겠다는 듯이 책상위에 놓은 책을 덮어버리고 다음 사람을 부르는 듯 벨을 누르고는 그 자리에서 눈을 감고 팔장을 꼈다. 중년여인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무언가 결심을 한 듯 의자에서 일어나 뒷문으로 걸어갔다. 중년여인이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명의 여자가 들어왔다. “원장님. 안녕하세요.” “아 예. 오셨습니까.” 남자는 눈을 떠 방금 들어온 두 여자를 쳐다보았다. 5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여인은 가끔씩 와서 사주나 궁합을 보고간 적이 있어서 낯이 있었다. 옆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인은 오늘 처음 보는 여인이었다.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나요?” “지난번에 조카 취업문제로 원장님께 부적을 받아간 적이 있잖아요?” “예.” “그게 사실은 조카가 아니라 여기 있는 딸애의 취업 때문이었거든요.” “따님이요?” 남자는 짐짓 놀란 듯한 표정으로 50대 후반의 여인에게 물었다. 그 여인은 자신이 딸의 문제를 조카의 문제로 둘러댄 것이 쑥스러운 듯 잠시 얼굴을 붉히더니 수다스럽게 얘기했다. “그때 원장님이 써주신 부적이 효험이 있어서 제 딸이 열 번째 만에 취직이 되었어요.” “...........”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직장이 좀 마음에 걸려서요.” “무슨....” 수다스럽게 말을 하는 여인을 바라보며 남자가 말을 흐리자 여인이 다급하게 말했다. “그 회사가 옷을 만드는 회사인데, 얘가 그 회사 전무 비서실에 취직이 되었어요. 그 전무란 사람이 사장 아들인데 비서실 직원들이 자꾸 회사를 그만 둔답니다. 얼굴이 반반하게 생겨서 여사원들에게 인기가 많은데 바람둥이라 비서실 직원들을 가만두지 않는다고 하네요. 얘가 들어간 지 한 달이 채 못됐지만 같이 있던 여자가 그만두고 지금은 비서실에서 혼자 근무하는데... 전무라는 남자가 자꾸 이상한 행동을 한다지 뭡니까?” “이상한 행동이요?” “유뷰남이란 남자가 퇴근시간이 가까워 오면 저녁을 같이 먹자고 하고서는 꼭 조명이 약한 식당의 밀실이나 일식집의 따로 떨어진 방에서 둘이서 식사를 하는 거예요. 거기다 새로 디자인한 옷이라며 노출이 많은 옷을 가져와 사무실에서 갈아입어 보라고 한답니다. 그리고 결재를 받을 때는 얇은 브라우스 차림이나 그렇지 않으면 민소매 차림으로 전무실에 들어오라고 한다지 뭐예요. 게다가 꼭 미니스커트를 입고 출근하게 하고 아침에 커피를 타서 가져다주면 자기 맞은 편 소파에 앉아서 커피 다 마실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는 등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하네요. 어렵게 들어간 회사라 그만두기는 싫은데, 바람둥이 상사 때문에 불편한 모양이에요.” “............” “그래서 이번에도 원장님께 부적을 하나 써 주십사하고 딸아이를 직접 데리고 왔답니다.” 여인이 장황한 설명을 하는 동안 남자는 얘기를 들으며 두 여자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여인의 설명이 끝나자 남자는 종이와 펜을 건네주었다. “생년월일과 이름을 적어주세요.” ‘음 1977년 7월 13일 인시 장진경(張眞敬).’ 여인이 생년월일과 이름을 적은 종이를 받은 남자는 습관처럼 책을 펴서 뒤적이며 무언가를 적었다. “정사(丁巳)년 무신(甲辰)월 병진(丙寅)일 경인(庚寅)생이라. 쌍화생토(雙火生土)에 수생쌍목(水生雙木)하니 성공발전(成功發展)이 점진도래(漸進渡來)라. 따님의 사주는 불의 기운이 많고 나무의 기운 또한 많아서 꾸준히 노력하면 크게는 아니지만 조금씩 발전하는 사주입니다. 좋은 사주와 좋은 이름이 조화를 이루어 앞으로 꽤 성공할 것입니다.” “전무와는 어떻게 되는지요?” “그 전무의 생년월일이나 이름을 아시는지요?” “태어난 시는 모르고 이름은 으뜸 원(元) 해뜰 욱(旭)으로 배원욱(裵元旭)이예요.” 이번엔 젊은 여자가 나서서 전무라는 남자의 이름을 말했다. 남자는 또 책을 뒤적여 무언가를 적더니 펜을 놓고 젊은 여자를 바라보았다. “아가씨 손을 올려보세요.” 주저하는 젊은 여자를 50대 여인이 다그치자 슬그머니 책상위로 손을 올려놓았고 남자는 주저하지 않고 젊은 여자의 손을 잡았다. 언제나 똑 같은 행동처럼 손을 잡은 뒤에는 눈을 감고 나지막하게 무어라 중얼거렸다. ‘저... 전무님. 이러시면.....’ 짧은 치마를 입고 서있는 젊은 여자의 뒤쪽에서 남자의 손이 종아리에서부터 오금을 지나 허벅지로 기어오른다. 치마 속으로 들어가려는 손을 잡고 젊은 여자가 남자를 제지한다. 그러자 남자의 손이 떨어지고 젊은 여자를 옆에 앉힌다. 다시 남자의 손이 젊은 여자의 손을 잡더니 팔을 따라 올라가 민소매티 겨드랑이 쪽을 비집고 들어간다. 젊은 여자의 손이 다시 남자의 손을 제지하지만 남자의 손은 재빨리 옷 안으로 들어간다. 결국 브래지어 안으로 들어가려는 남자의 손을 어렵사리 제지한 여자는 재빨리 사마실 밖으로 달려 나간다. ‘이러다 짤리는 것 아닌지 모르겠네.’ 사무실에서 젊은 여자와 전무라는 남자 사이에 벌어졌던 사건을 손바닥을 통해서 들여다본 남자는 좀더 빠르게 중얼거렸다. ‘하....하..... 전무님..... 자기야..... 나 지금 너무 좋아...... 보지가 불타고 있어......’ 젊은 여자의 짧은 치마는 안감을 보이며 이미 허리위로 올라가 있고 얇은 브라우스는 윗부분이 벌어져 가슴 아래로 내려와 탐스러운 여자의 유방을 고스란히 노출하고 있다. 남자는 한 손으로 그런 젊은 여자의 유방을 유린하며 집요하게 입술을 빨고 있다. 이미 바지를 벗어버린 듯 맨살이 드러난 엉덩이는 힘차게 움직이며 젊은 여자의 두 다리사이를 공략하고 있었다. 젊은 여자의 얼굴에는 쾌락과 흥분으로 가득 찬 표정이 떠올랐지만 남자의 얼굴에서는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전....전무님. 애는 지울게요. 제발...... 원하시면 언제든지 치마를 벗겠습니다. 아니 사무실에서는 언제든지.... 알몸으로....... 전무님을 기다리며 있겠습니다. 그리니 제발..... 그만두라는 말만....... 전 이 회사 그만둘 수가 없어요.’ 전무라는 남자 앞에서 무릎 꿇고 사정하는 알몸의 젊은 여자를 보면서 남자는 운명혜안공을 거두고 눈을 떴다. “전무라는 남자의 이름은 꽃을 좋아하나 열매는 맺지 못하는 이름입니다. 아가씨의 이름으로는 그 전무라는 남자에게 노리개 취급을 받을 뿐만아니라 그 남자로부터 벗어나기 힘들어요. 게다가 나중에는 그 남자에게 버림을 받게 됩니다.” “예?” “원장님. 부적이라도 지니고 있으면 막을 수 없을까요?” 남자의 말에 젊은 여자가 깜짝 놀라자 어머니라는 여인이 재빨리 물었다. “부적을 지니고 있으면 그 전무라는 남자의 행동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있지만, 그 부적이 없으면 효과가 없습니다. 그러니 부적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닐 수 있게 몸에 그려 넣어야 합니다.” “...........” “...........” “...........” 부적을 몸에 그려 넣는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아는 두 여자는 잠시 말을 못하고 있더니 젊은 여자가 짤막하게 말했다. “해주세요.” 젊은 여자의 말에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뜬 50대 여인이 젊은 여자와 남자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어렵게 취직한 직장을 잃기는 싫어요. 더군다나 유부남인 전무의 노리개가 되고 ?겨 나기는 더욱 싫어요.” 젊은 여자의 결연한 의지를 느꼈는지 50대 여인이 어렵게 고개를 끄덕이자 남자가 나지막하고 짧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는 밖에 나가셔서 기다리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