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이틀이 지나고 수요일 아침 9시.
여느 주부가 그러하듯이 그녀들의 아침 역시 분주하다. 그리고는 이내 안정이 찾아온다.
영호네 집.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외간남자와 "그 짓"을 할 지경에 놓인 영호 엄마는 남편과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자마자 입고 나갈 옷을 고르느라 여념이 없었다. 마음은 내내 편치 않지만, 그 학교에 너무도 가고 싶어하는 아들과 어느 학교에 가도 부담이 되는 것은 마찬가지인 자신의 처지를 떠올린다면, 운명과도 같은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옷장을 뒤진 지, 10여 분이 지났을까. 드디어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하고는 옷을 입어보았다.
약속시간은 무려 10시간가량 남았지만, 아무 옷이나 입고 갈 수는 없는 터라 입고 갈 옷을 미리 결정하고 상한 곳이 있으면 고치고 세탁까지 하기 위함이었다.
희진이네 집.
희진 엄마는 설거지와 집안 청소를 막 끝내고 홍콩 출장 중인 남편과 화상전화를 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은 5분 정도 일상적인 안부만 주고 받은 뒤, 전화통화를 끝냈다. 그리고는 전화를 끊자마자, 서둘러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일찌감치 시내에 나가서 머리를 하고 향수를 사올 참이었기 때문이었다.
진우네 집.
진우 엄마는 다른 엄마들과 달리 커피를 마시고 신문을 읽는 등 비교적 여유롭게 아침시간을 보내고 있다.
약속시간은 10시간 이상 남은데다 화장하는 것을 빼면 딱히 준비할 것도 없는 터였고, 무엇보다 전업주부의 길을 택한 뒤, 그동안 만끽하지 못했던 여유로움을 마음껏 만끽하게 되면서 아예 이런 생활 습관이 몸에 배었기 때문이다.
같은 듯 다른, 세 여자의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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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58분.
그렇게 시간은 흘러 오후 4시를 바라보는 시간이 되었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 되었다.
희진이네 집.
희진 엄마는 영호 엄마와 진우 엄마에게 같이 저녁도 먹을 겸해서 5시 반까지 만나자고 문자를 보냈다.
문자를 보내고 답장을 기다리는 사이,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희진이었다. 옷을 잘 차려입은 엄마를 보더니 희진이 말했다.
"엄마, 어디 가?"
"응, 6시에 엄마들 모임이 있어서 나갔다 오려고."
"고등학교 입시 얼마 안 남았다고 치맛바람이 단단히 난 모양인데 제발 그러지 마."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치맛바람이라니?"
"내가 모를 줄 알아? 요즘 다른 엄마들 만나서 이상한 얘기만 다 듣고 오잖아."
"다 너 잘 되라고 그러는 거지."
"그렇게 나를 위한다는 사람이 내가 하고 싶은 걸 못하게 해?"
"또 또 말대꾸한다. 얼른 씻고 네 방으로 들어가."
"들어가라고 안 해도 들어갈 거거든."
희진의 말은 사실 하나도 틀린 것이 없다. 희진은 이미 자신의 미래에 대해 구상을 끝냈다.
이제 하나하나 자신의 꿈을 펴나가는 일만 남았다. 그녀 역시 그것을 잘 알지만,
그 소질은 특목고에 진학해서도 얼마든지 발휘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펴며 딸을 설득해왔다.
"엄마 나가는데 인사도 안 해?"
"……"
"엄마 나간다고.."
"알았어..."
화가 난 것인지 무언가에 빠진 것인지, 희진은 문도 열어보지 않은 채 엄마를 배웅했다.
영호네 집.
영호네 집은 아직 조용하다. 아이들이 학교 수업을 마치면 곧장 학원에 가는 까닭이다.
영호 엄마는 아이들과 간단히 전화통화를 한 후, 곧바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신이야? 응~ 나 지금 나가려는 참인데 오늘 늦을 거 같아서."
"왜?"
"오늘 엄마들 모임 있잖아. 영호 입시도 얼마 안 남았고 해서 뭐 좀 상의하려고."
"일찍 좀 만나지."
"직장 다니는 엄마들도 있어서 저녁으로 잡았어."
"알았어. 너무 늦지 말고."
"응~"
예상대로 남편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평소처럼 너무 늦지 말라는 당부만 한 채 전화를 끊었다.
진우네 집.
아니나 다를까, 진우는 오늘도 어김없이 컴퓨터 본체를 들고 귀가했다. 고장난 친구의 컴퓨터였다.
진우는 옷을 벗기가 무섭게 자신의 앞날을 알지 못한 채 본체 내부 이곳저곳을 손보기 시작했다.
이것이 좋게 보일 리 없는 진우 엄마. 하지만, 오늘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엄마 간다."
"응."
엄마를 보는 둥 마는 둥 하더니 묵묵히 제 할 일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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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 28분.
그렇게 약속장소에 도착한 세 사람은 미리 저녁을 먹자며 가까운 음식점에 들렀다.
그리고는 자리를 잡더니, 서로의 옷차림에 대해 한마디씩 내뱉기 시작했다.
먼저 진우 엄마가 말했다.
"언니들, 잘 차려입었네. 남자들이 반하겠다."
"그래? 이 옷 고르는데 1시간 걸렸어."
영호 엄마의 대답이었다. 이번에는 희진 엄마가 말했다.
"겉옷도 겉옷이지만, 속옷이 중요하지. 다들 무슨 속옷 입고 왔어?
나는 망사 입고 왔는데 오랜만에 입어서 그런지 좀 낯설다."
그러자, 진우 엄마가 말했다.
"나는 노코멘트할래. 이따 다 볼 텐데, 지금 유출하면 안 되지."
영호 엄마도 웃으면서 힘을 보탰다.
"듣고 보니, 나도 그래야겠네."
희진 엄마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다들 치사하네. 나만 바보된 거네. 아, 그나저나 영호 엄마는 준비는 잘하고 왔어?"
"음. 솔직히 말하면 인터넷 뒤져서 야한 동영상 하나 찾아서 보고 왔지. 뭐"
영호 엄마의 대답을 듣고 있던 진우 엄마가 웃으며 말했다.
"어떤 걸로 보고 왔는지 모르겠는데, 요즘은 시시하다고 잘 안 보더라."
뭔가 잘 아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희진 엄마가 답했다.
"시시한 것도 시시한 거 나름이지, 며칠 전에 보니까,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체위도 많이 하더라.
요즘은 카메라 달린 휴대전화가 널려서 그런 걸로 찍어서 유출하기도 하더라."
진우 엄마가 맞장구치며 말했다.
"맞아. 요새 그런 거 널렸어. 혹시 모르겠다. 몰카라도 찍히면."
순간 경직된 영호 엄마가 말했다.
"설마. 그러기까지야 하겠어. 요즘은 수사력이 좋아서 신고하면 다 잡히는데."
희진 엄마 -
"그렇기는 한데. 만약에 외국으로 도망가거나 하면…"
진우 엄마 -
"아주 소설을 써라. 소설을 써. 학교까지 차려놓고 도망가면 어떻게 되는 거야?"
희진 엄마 -
"원래 한두 사람이 물을 흐리는 법이지."
영호 엄마 -
"그건 그래. 누구 하나가 딴 맘을 품으면 큰일 나지."
진우 엄마 -
"에이, 이상한 이야기는 그만하고 밥이나 먹자. 30분 남았네."
희진 엄마 -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얼른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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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오후 6시 47분.
약속장소에 도착한 그녀들. 젊은 남자가 일러준 학교 체육관 선수 대기실로 향했다.
웬만한 교실 반 정도 크기의 선수 대기실에는 매트와 넓은 소파, 그리고 정수기와 수건, 옷장 등이 구비돼 있었고, 그녀들이 들어온 뒷문 정면으로는 샤워실 입구가 있었다. 약속시간을 고작 10분 정도 남겨놓은 상황이었지만, 약속장소에는 아직 아무도 도착하지 않았고, 난방장치가 가동 중인 실내에 불만 휑하니 켜져 있었다.
뭔가 이상하다는 듯한 반응을 보이며 진우 엄마가 말했다.
"전화라도 해봐야 하는 거 아닌가?"
"그냥 기다리지 뭐."
영호 엄마의 말에 다들 주변을 서성인 채 그들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그러기를 10여 분, 엊그제 그 남자가 도착했다.
"아, 늦어서 죄송합니다. 곧 들어오실 겁니다."
이어 건장한 체형의 남자와 호리호리한 체형의 남자, 그리고 약간 마른 체형의 남자, 이렇게 세 남자가 들어왔다.
엊그제 본 그 남자는 모두 자리에 앉을 것을 권하며, 함께 들어온 남자들에게 클립으로 묶인 문서들을 나눠주며 한 사람씩 소개를 시작했다.
"이분은 산부인과 원장을 겸하고 계신 김 이사님이고, 이분은 중소기업체 사장을 맡고 계신 박 이사님이고, 마지막으로 이분은 체육 담당이신 1학년 부장님입니다. 그리고 이분들은…"
남자의 소개가 끝나자, 6명의 남녀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눈인사를 나눴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젊은 남자는 자기 할 일은 다 끝났다는 듯이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밖으로 나갔다.
남자가 나가자, 체육 선생이 웃으면서 말문을 열었다.
"너무 부담 가지지 마시고, 마음 편히. 남편이다, 애인이다 생각하시고,
마음 편하게 하시면 됩니다. 애인들 하나씩 다 있으시죠?"
대답하지는 않았으나, 그녀들은 그렇다는 듯한 표정을 보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박 이사가 따뜻한 캔커피 하나씩을 건네며 마침내 말문을 열었다.
"저희를 굉장히 어려운 사람으로 대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희도 어머님들 같은 아내를 둔 사람이니까,
기왕 결정하신 것, 즐기면서 하시면 서로에게도 좋지 않습니까. 그냥 편안하게, 그렇게 해주셨으면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경직되어 계시는 것보다는 마음을 열어주시면 좋겠지요."
이번에는 김 이사가 말했다.
"아까 설명했다시피 저는 산부인과 의사입니다. 제 병원에 오신 분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
이 일에 있어서만큼은 어머님들을 환자가 아니라 여자로 볼 겁니다. 그러니 어머님들도 제가 의사나 학교 이사가 아니라 그냥 애인이라고 생각하시고 그렇게 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때 희진 엄마가 다른 엄마들의 긴장을 풀게 할 의도인지, 웃으면서 농담 섞인 말을 내뱉었다.
"다음에 산부인과 가면 잘해주세요. 공짜로 검진도 해주시고.. 그러면 생각해볼게요."
웃으면서 김 이사가 답했다.
"그럼요. 병원 재정에 타격이 없는 선에서 얼마든지 해 드리겠습니다.
그 정도의 호의는 얼마든지 베풀 수 있습니다. 언제든지 오시기만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