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명희 그 계집애 도서관장 시켜줬다면서?" "그걸 시켜주긴 누가 시켜줘?" "그럼 사람들이 하는 말은 뭔데?" "그 어린이도서관은 여성위원장님이 친구들 도움을 받아 시작한 거야. 난 어떻게 그걸 진행시켜야 하는지 조언을 해드렸을 뿐이고. 그리고 내가 무슨 힘이 있고 돈이 있어서 그런 도서관을 만들고, 또 누구를 도서관장으로 만들고 하냐."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그 계집애를 잘 봐서 시켜줬다고 하던데." "내가 여성위원장님을 잘보고 못보고 할 게 없잖아. 항상 내가 도움을 받는 입장인데." "그럼 그 계집애를 구의원 시켜줄 거야?" "구의원은 자기가 알아서 하는 것이지 누가 시켜주고 말고 할 게 아니잖아. 영감도 그런데는 개입하면 안 되는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나도 알 만큼은 알아. 자기 같은 사람이 힘을 써주면 안될 일이 뭐 있어." "이 사람 진짜 큰일을 낼 사람이네. 괜히 그러다가 쇠고랑 찰 일 만들일 있어? 말조심해." 아침에 출근을 위해 운전을 하고 있는데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성위원장님이 어린이도서관 관장이 된 것에 대해서 잔뜩 골이 난 것인지 말투가 곱지 않았다. 제발 아침시간 만큼은 즐거운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만들어 주면 좋으련만 이 여자는 타인의 기분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그런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는 모양이었다. 조금은 무거운 기분을 가지고 사무실 문을 열었다. "어? 아침부터 웬일이세요?" "명희가 저보고 당분간 사무실에 출근을 좀 해달라고 부탁을 해서요." "특별하게 할 일도 없는데 위원장님이 여사님을 귀찮게 만드셨네요." "귀찮긴요. 어차피 집에 있어도 특별하게 할 일도 없는 걸요. 그런데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 일이 있을 게 뭐 있습니까?" "아니 박 비서님 얼굴이 조금 어두운 것 같아서요." "아~ 아닙니다. 오다가 엉뚱한 전화를 받아서요." "예. 커피 한잔 하실래요?" "아뇨. 앉아 계세요. 제가 타 드리겠습니다." "아뇨. 제가 타드릴게요. 같은 커피라도 여자인 제가 타야 더 맛있는 것 아닌가요?" "아이고 여사님도." "피~ 아직 제 이름 모르시죠?" "아. 예. 죄송합니다." "저 서 진숙이라고 해요. 좀 촌스럽죠?" "촌스럽긴요? 부모님께서 심사숙고해서 지어주신 이름인데요." "아무튼 앞으로 저 부르실 때 여사니 뭐니 하지 말고 이름을 불러주세요." "예. 여사님." "또." "아이고 죄송합니다. 진숙씨." "봐요. 그게 훨씬 부드럽게 느껴지잖아요." "성함을 불러드리는 것이 편하시다면 그렇게 해 드려야지요." "예. 앞으로 계속 그렇게 해주세요." "넵!" "그런데 제가 어떤 걸 도와드리면 되죠?" "위원장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으시던가요? 사실 특별하게 할 일은 없습니다. 여성위원장님께서도 굳이 나오시지 않으셔도 되는데 혼자 애가 달아서는……." "예. 그럼 제가 알아서 할게요.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그 정도쯤이야." 여성위원장님의 친구인 진숙씨와 커피를 마시며 잡담을 나누며 서로를 알아갔다. 참으로 나이답지 않게 차분하면서도 아직은 30대의 통통 튀는 매력이 있는 여자분 이었다. 덕분에 출근길에서 받았던 스트레스도 어느 정도 해소가 되어 기분 좋은 아침을 맞이할 수가 있었다. "명희 좋아하시는 것은 아니죠?" "예? 갑자기 그 무슨 말씀을요? 저 여성위원장님 좋아합니다." "피~ 명희가 아무리 눈치를 줘도 박 비서님 꼼짝도 하지 않아서 박 비서님이 명희 같은 취향이 아닌 모양이더라고 실망을 하던데요." "아이고 취향이 뭐가 있습니까? 위원장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인데. 일 야무지게 잘 하시죠. 거기에다 어르신들 오시면 싹싹하시지요. 예쁘죠." "그만요. 그러니까 명희 그 계집애가 속 터져서 단념을 하죠." "단념을 하다니 무슨." "다른 남자라면 말장난 한다고 하겠지만, 명희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러실 분이 아니니 명희 말대로 박 비서님은 정말 눈치가 없는 남자이시네요." "예. 제가요?" "예. 여자가 그만큼 눈치를 줬으면 남자가 반응을 보여야 하는데 무슨 목석도 아니고." "……." "겁내실 일 없으세요. 이미 명희가 박 비서님을 포기했으니까요." "포기하고 말고 할 일 없었는데." "정말 명희가 박 비서님 좋아하고 있었던 것 모르세요?" "아니. 위원장님도 그렇고, 그리고 저도 위원장님 좋아한다니까요. 싫어할 이유도 없고." "정말 박 비서님 깬다. 그렇게 좋아하는 게 아니라 명희 그 계집애가 박 비서님을 남자로 좋아했었다고요." "예? 그런 말도 안 되는." "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세요? 남여가 한 사무실에서 10년 가까이 붙어있으면 정분이 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거죠. 아니면 둘 중 한사람이 지독히도 매력이 없든지." "그러니까요. 제가 남자로서 영 엉망인 놈이니까." "박 비서님이 어때서요?" "대충 아시잖아요. 백수에, 가난뱅이에, 키도 작고, 얼굴도 안 생기고, 뭐 남자로서 매력이 있을게 없으니까요." "박 비서님은 여자들이 모두 그런 외적인 것에만 신경을 쓰는 속물로 생각하고 계세요?" "그런 이야기는 아니잖아요. 속물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을 하죠. 남자들도 대부분 여자를 볼 때 예쁜지 아닌지 그것부터 따지는 남자들이 대부분이니까요." "그럼 박 비서님은 명희가 박 비서님 생각만큼 예쁘지 않아서 모른 척 하신 건가요?" "위원장님이 왜 안 예뻐요? 그 정도면 충분히 예쁘시잖아요." "그럼요?" "위원장님은 같이 일을 하는 동료입니다. 열심히 영감과 제 일을 도와주시는 분께 흑심을 품으면 제가 나쁜 놈이죠." "아이고 내가 말을 말아야 하겠네요. 그러니 명희가 속이 터진다고 하지. 아무튼 명희 그 계집애가 비서님 포기했다고 하니 안심하세요." "……." "그리고 요즘 웬 여시 같지도 않은 여시가 박 비서님 홀리려고 한다면서요?" "예.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신지?" "명희 그 계집애가 혹시 박 비서님이 그 여시에게 홀려서 문제 생길까 겁이 난다면서 저보고 박 비서님 지켜드리라고 해서 제가 오는 거예요." “제가 얼라도 아닌데…….” “박 비서님 보면 명희 말이 딱 맞아요. 눈치가 없는 게 아니라 아예 여자에 대해서 모르시고 계시는구먼. 그러니까 명희 그 계집애가 걱정을 하죠. “저 그 정도 아닙니다.” “아뇨. 다른 일은 몰라도 여자문제 만큼은 젬병 맞으세요.” “무슨 남자가 쉰이 다 되어서도 이렇게 순진하세요.” “…….” “아무튼 앞으로 여자문제에 관해서는 제가 시키는 대로 하세요. 그 여시 같지도 않은 게 얼마나 여시 짓을 할지 몰라도, 아셨죠?” “예. 각하!” “킥!” 진숙씨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황당함을 느낀다. 눈치를 줬다는 것은 뭐고, 하기야 눈치를 줬다고 하더라도 내게 그 양반의 그 마음을 받아들일 정신적 여유가 없을 것이니 그렇게 해보았자 무얼 어떻게 했겠는가? 하지만 여성위원장이 청라와 관계가 엮어져 내가 피해를 볼까 걱정하는 그것은 사실이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인 것을. “점심이나 드시러 가시죠.” “뭐 드시고 싶으세요?” “저야 아무거나 잘 먹으니 진숙씨 드시고 싶은 걸 말씀하세요?” “보신탕요.” “예???” “피~ 그것 봐요. 아무거나 다 잘 드시는 것 아니잖아요. 명희 이야기 들으니 입이 엄청 짧다고 하더니만.” “보신탕은 특별한 음식이잖습니까? 그런데 진숙씨 보신탕도 드세요?” “아뇨. 저도 못 먹어요.” “그런데 왜요?” “박 비서님께서 아무거나 잘 드신다고 하니 일부러 그래봤어요,” “짓궂으시긴…….” “자~……. 어디 가세요?” “선 여사님 어서 오세요. 지금 점심 먹으러 가는데 같이 나가시죠.” “아뇨. 저 방금 먹고 오는 길인데요.” “그래요? 그럼 어떻게…….” “두 분이서 드시고 오세요.” “언니 같이 가죠?” “아니 박 비서님과 다녀와.” “예. 언니.” 진숙씨와 점심을 먹기 위해 사무실을 나서면서 문을 여는데 그녀가 문 앞에서 문을 열고 있었다. 그녀는 아마도 ‘자기’가 어쩌고 하면서 나를 부르려다가 진숙씨를 보고 입을 닫은 모양이다. 아무튼 그녀는 사무실에 남아있고 나와 진숙씨는 사무실 옆의 순두부찌개 집으로 가서 순두부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요즘 부쩍 자주 사무실에 나온다면서요?” “누가요?” “저 여시 아줌마요.” “여시오?” “예. 조금 전에 그 여시 아줌마요.” “아. 예. 그런데 왜 여시라고 해요?” “소문 별로거든요. 무슨 걸레도 아니고. 그런데 박 비서님은 그걸 모르시니.” “제가 모르긴 뭘 몰라요. 그래도 지금까지 알았던 여자들 한 줄로 세우면 부산에서 서울까지 왕복을 하고 남는데.” “치~ 그러면서 그렇게 여자를 모르세요. 여자가 들이대면 눈치도 좀 알아채고 그래야지.” “저한테 들이댄 여자 없다니까요? 들이댈 여자가 있다면 만세를 부르죠.” “아무튼 명희 그 계집애가 빨리 속을 차린 게 똑똑한 일이었네요.” “.....” “선 여사란 여자 정말 조심하세요. 저도 면전에서는 언니라고 부르지만 얼굴 맞부딪히는 것도 싫거든요.” “예. 알겠습니다.” 점심을 먹고 바로 사무실로 가려다가 어린이 도서관에 들렀다. 대문 밖까지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고생 많으십니다.” “예. 박 비서님 어서 오세요. 넌 웬 일이야? 사무실 지키지 않고.” “응. 박 비서님과 점심 먹고 잠시 들러보러 온 거야.” “자 들어와. 들어오세요.” “예.” “안녕 하세요~” “응. 안녕.” 아이들이 일제히 일어나서 인사를 한다. “아이들 인사성 하나는 바르네요.” “그나마 도서관에 보낼 정도의 집 부모님들은 그 정도 교육은 시키고 보내니까요.” “예. 아무튼 보기가 좋습니다. 뭐 불편한 것은 없으시고요?” “불편 할 일이 뭐가 있어요. 이제 시작인데.” “예. 혹시라도 무슨 문제가 있으면 바로 연락 주세요.” “걱정 마세요. 진숙이 좀 많이 부려먹으세요.” “괜한 일을 하셔서…….” “어. 박 비서님 언제 오셨어요?” “아. 여사님 고생 많으시죠? 방금 왔습니다.” “참 그런데 점심 식사는요?” “우린 여기서 먹어요. 도시락 싸오거든요.” “예 불편하시는 않고요?” “재미있는 걸요. 그런데 진숙이가 좀 심심할 테니 박 비서님이 좀 재미있게 해주세요.” “예.” “얘. 기대하지 마. 박 비서님 여자들 재미있게 해주실 분 절대 아니더라.” “넌 겨우 반나절 같이 있었으면서.” “명희 저 가스나 말이 100% 맞았어.” “정말?” “응.” “그럼 정말 걱정되네. 내가 명희 대신에 박 비서님께 대시해 볼까 했더니 참아야겠다.ㅋ” “아이고 왜들 이러십니까. 제가 뭘 잘못했다고.” “여자 마음을 모르는 것도 죄가 되는 세상입니다.” “저 여자 잘 아는데요.” “피~ 알기는 뭘 알아요. 아무튼 진숙이 너도 안 되면 나한테 토스해. 내가 우리 박 비서님 완전히 녹여 놓을 테니까.” 이야기가 요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몇 번 봤다고 이 양반들이 많이 편해졌는지 사람을 들었다 놓았다 난리도 아니었다. 더 이상 이 자리에 있다가는 본전도 찾지 못할 분위기에서 진숙씨를 남겨두고 사무실로 향했다. “그년 역시나 오늘 또 왔더라.” “언제?” “박 비서님과 점심 먹으려고 사무실 나서는데 문을 열고 들어왔어. 그런데 분위기가 좀 그래.” “뭐가?” “문 열고 들어오면서 ‘자~’이렇게 하다가 갑자기 말을 바꾸는 분위기였거든.” “설마 자기라고 한 것은 아니겠지?” “벌써 그렇게 까지 되었겠어?” “모르지 워낙에 여시니까.” “아무튼 진숙이 네가 박 비서님 옆에서 떨어지지 마. 언제 그년이 박 비서님 홀릴지 모르니까.” “계집애 너 아직 단념 못한 거야?” “그게 아니라 그년에게 홀려 넘어가면 박 비서님 견디지 못할 거야. 그 사람 겉으로 보기엔 안 그래도 엄청 여린 사람이거든.” “아무튼 사람은 괜찮은 것 같던데.” “응. 그건 확실해. 정치판에 사람들 보면 하나같이 인간쓰레기 같은 것들이 많은데 그 사람은 절대 그런 부류는 아니거든. 그런 곳에서 그렇게 순진하게 살면서 어떻게 버티고 살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 사람이야.” “너 그 사람 완전히 단념한 것 맞아?” “응. 나하고는 인연이 아닌 거 같더라.” “만약 내가 박 비서님을 꼬드기면 어쩔래?” “그거야 니 능력이지.” “정말 그게 니 진심 맞아?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만약 내가 그 사람을 단념하지 못했다면 나 이거 안했어.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사람 옆에서 지켜보고 있지. 그 여시 같은 년에게 뺏길 바에는 차라니 네가 낫지. 박 비서님에게도 그리고 너에게도.” “나 그 말, 진짜로 믿는다.” “사람이 말을 하면 좀 믿어라. 절대 후회 안 해.” “진숙이는?” “응. 도서관에 남아있어.” “걔는 왜 오는 건데?” “여성위원장님이 자기가 사무실을 비우니 안심이 되지 않는지 사무실 일을 도와주라고 했다던데.” “지가 뭔데. 별꼴이야.” “그래서 자기는 그러라고 했어?” “도와주겠다는 싫다고 할 수가 없잖아.” “자기는 여자만 보면 무조건 좋지?” “뭐 그런 말이 있어. 그리고 사무실에서는 말조심 좀 해. 언제 누가 올지도 모르는데 만약 누가 들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알았어. 아무튼 나, 갈 거야. 걔 계속 나오면 내가 사무실 오기가 좀 그렀겠네. 나중에 전화 해.” “알았어. 나중에 연락하자.” 내가 사무실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청라는 내게 몇 마디를 던지고 사무실을 나갔다. 본인 스스로도 동생들이 자신에 대해 별 호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몇 가지해야 할 업무를 처리한 후 흡연실로 들어가 담배를 피워 물었다. 이놈의 담배를 끊어야 하는데 그 담배 끊는 일이 어찌 이렇게도 힘이 드는지.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사무실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진숙씨 이리라. ‘똑. 똑.’ “예. 저 담배 피우고 있는데요.” 진숙씨가 흡연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내 앞자리에 앉더니 핸드백에서 담배를 꺼낸다. “저 이상한 여자로 보지 마세요.” “왜 제가 이상한 여자로 봐요?” “담배 피우는 여자 이상하지 않으세요?” “그게 뭐 이상해요. 담배도 기호식품일 뿐인데.” “이렇게 개방적이신 분이 여자는 왜 그렇게 모르실까?” “아~ 참. 저 여자 잘 알고 있다니까요. 지금까지 나를 거쳐 간 여자만 해도 그 숫자가 얼마인데.” “그 줄을 한번 보고 싶네요.” “진짜 언제 날 잡아서 집합을 한번 시켜야 하겠습니다.” “예. 그럼 구경 한번 할게요.ㅋㅋ” “진짜 한번 줄 세워버릴까 보다.” “박 비서님 생활을 명희가 쫘~악 꿰고 있는데 무슨 줄은……. 아직도 못 잊고 계시죠?” “잊긴 뭘 잊어요?” “좋아하셨던 분 있으셨다면서요. 그게 벌써 10년 가까이 되었다고 하더니만, 순애보가 따로 없네요. 요즘 세상에 박 비서님 같은 남자가 있으려나 몰라.” “위원장님이 엉뚱한 말씀을 하셨네요.” “그런데 저 이방에 온 이유가 있어요.”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명희 대신에 제가 도전하기로 했거든요.” “도전은 무슨?” “박 비서님을 그 여시에게서 지키고, 그리고 박 비서님을 내 남자친구로 만드는 도전요.” “아 참. 왜 그러십니까? 저 능력 없어요.” “능력은 무슨 능력?” “저 돈도 없고, 그리고 생긴 꼬락서니는 이렇고, 그렇다고 권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됐네요. 아무튼 그 문제는 제 마음대로 할 거니까 박 비서님은 그냥 가만히 계세요.” 한 마디를 남긴 채 진숙씨가 바깥으로 나갔다. 난 또 다시 담배를 입에 물었다. 갑자기 발생한 이 황당한 사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정리가 되지 않아서. 이러다가 또 새로운 인연과 엮이는 상황이 생기게 될까 그것이 걱정이 된다. ‘이제 더 이상의 인연은 엮지 말아야 하는데.’라는 그 생각……. 결국 김 차장과 그년은 이혼을 하게 되었다. 법원에 정식으로 협의이혼을 신청하고 3개월의 이혼숙려기간을 거친 후, 동사무소에 이혼확인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이혼에 관한 모든 절차를 끝을 냈다. 김 차장은 약속한 위자료를 통장에 넣어 그년에게 건넸고 그년은 자신의 짐을 챙겨서 친정이 있는 대연동으로 갔다. 대연동 그년의 집에는 그년의 노모가 홀로 살고 있었다. 그년의 노모는 딸인 그년에게 몇 차례 악담을 퍼부어 대더니 대문 밖으로 나서고 그년은 자신의 짐들을 결혼 전 자신이 기거했던 방에다 쌓아 놓은 후, 핸드백과 캐리어를 끌고 집을 나선다. 택시를 타고 도착한 곳은 부산역. 한동안 열차시각표를 응시하던 그년은 목적지를 정했는지 표를 끊고 1층으로 내려가 커피숍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곳에서 1시간 쯤 시간을 보내던 그년은 다시 몇 군데 전화를 걸었으나 아무도 받지 않자 결국은 단념을 하고 일어나 플랫폼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년이 도착한 곳은 자그마치 6시간 반쯤의 시간이 걸리는 정동진이었다. 부산역에서 기차를 타고 대전에 내려서 다시 고속버스로 이동하여 도착. 여기서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하긴 그년에게 이 정동진은 나름 추억이 있는 곳이기도 할 것이다. 예전 친구들과 2박3일 일정으로 정동진에 간다고 하고선 그 시간들 동안 잠수를 타서 내 속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던 그런 일이 있었던 곳이었으니까. 하지만 당시 친구들이랑 갔다 왔다는 말은 거짓말일 수도 있었다. 당시에 함께 다녀왔다고 했었던 그 친구들 중의 하나를 내가 우연히 연산동에서 보았으니까 말이다. 정동진에 도착한 그년은 모텔에 방을 잡았다. 그리고 잠시 후, 옷을 갈아입고 바깥으로 나온다. “오랜만이네?” “‘피식~’ 그동안 나 안보고 싶었어?” “어차피 일회용이었는데 보고 싶고 말고 할 게 있나?” “일회용?” “그럼 아니야? 어차피 당신이란 여자도 낮선 곳에서 딴 남자 물건 맛 실컷 보고 즐기다가 간 것이고, 나 역시 주겠다는 여자 한번 잘 먹었던 것이고.” “하긴 그러네. 당신 물건 꽤 괜찮았었다.” “왜 좆 맛이 그리워 여기까지 온 거야?” “아마도. 그냥 생각나는 게 여기밖에 없어서.” “오늘은 안 되는데. 처하고 어디 가기로 약속을 해놓아서.” “그럼 지금 좀 하고 들어가면 안 되나?” “대 낮부터?” “뭐 어때?” “숙소 잡았어?” “응. 지난 번 거기에.” “알았어. 먼저 들어가 있어. 30분쯤 있다가 찾아갈게.” 결국 이거였다. 이년은 이미 그때도 나를 속였었던 것이었다. 친구대신에 남자를 사냥하러 온 그것. 결국 그나마 순진하고, 나이가 좀 들었던 연산동의 그 사람을 빼고 함께 어울려 다녔었던 셋이서 친구들과 놀러간다는 핑계로 섹스 여행을 왔었던 것이었다. 내가 그 정도로 만족을 시켜주지 못했던 것이었나 하는 의심이 들었다. 나름 잘한다고 생각하고 살아왔었는데……. 그 남자와 헤어진 그년은 다시 모텔로 발걸음을 옮기고, 그 남자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한 가게로 들어섰다. “어~ 어서와.” “장사 좀 되냐?” “뭐 항상 그렇지. 그런데 대낮에 웬 일이야?” “응. 재작년인가 네가 먹고 싶다고 했던 년 있었잖아.” “재작년?” “재작년 겨울에 부산서 왔다고 하던 미친년들 셋.” “아. 그 성이 좀 특이했던 여자?” “응. 그년이 왔네.” “어디? 여기를?” “응.” “무슨 일로?” “좆 맛이 그리워서 왔겠지. ㅋㅋ” “셋 다 왔어?” “아니 그년만.” “혼자 왔는데 그 이야길 왜 하는 거야? 사람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성격 급하기는, 그냥 같이 따먹자는 이야기지.” “한 년을? 문제 생기면 어떻게 하려고.” “좆 맛보려고 온 년이 문제 생길 일이 뭐 있겠어. 오늘 밤에 시간 좀 내.” “좋지. 그럼 현수도 불러야겠네.” “그래야겠지. 오늘 그년 허벌창 내보자.” “아무튼 그년 간도 크네. 다시 찾아올 생각도 다하고. 저거 서방은 알기나 하는지.” “알면 가만히 두겠냐?” “아무튼 우리야 똘똘이 목욕시켜서 좋지만, 참 그년 서방이란 놈도 불쌍하네.” “여하튼 현수 10시까지 이리로 오라고 연락해.” 결국 그놈들은 그년을 돌림빵을 놓을 모양이었다. 하긴 바람도 아닌 섹스를 위해 부산서 그 먼 곳까지 찾아왔었던 년들이니 그들로서는 부담도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들도 그런 경험이 처음이 아니었을 것이고. 밤이 찾아오고 그 남자의 친구 가게에 남자들 셋이 모였다. “야. 네 좆이 끝내줬었던 모양이네. 이년을 잊지 못하고 찾아온 것을 보면.” “그러니까 앞으로 형님으로 잘 모셔라.” “지랄을 하세요.” “아무튼 내가 먼저 들어가서 하다가 그년이 바짝 오르면 내가 전화를 걸 테니까, 옆방에 기다리고 있다가 전화벨소리가 나면 전화 받지 말고 내가 있는 방으로 와. 나 다음으로 누가 할래?” “내가 하지 뭐. 생일도 내가 빠르니까.” “그럼 나는 뭐하고 기다리는데?” “넌 그년 입에다 좆 물리면 되지 뭐 문제될 게 있나?” “아. 그러면 되겠네.” “그런데 너 안에다 싸지는 마. 중간에 쑤시려면 찝찝하니까.” “알았다. 아무튼 오늘 그년 완전 보내버리자. 앞으로도 자주 와서 대줄 마음 생기도록.” “사진 몇 장 찍는 건 어떨까?” “그년이 지랄하면 어쩌려고. 꼭 찍으려면 아예 휴대폰을 동영상 모드로 해서 들고 들어가자. 그년 얼굴 잘 나오도록. 찍히고 나면 알아서 기겠지.” “그런데 그년 언제 간다는데?” “한 이삼일은 있다가 가겠지.” “와~ 그럼 이삼일 동안은 완전 천국에서 살겠다. 만약 내일 안가면 내일은 내가 제일 먼저 쑤신다.” “그러든지.” 나름 순서도 정하고, 어떻게 할 것인지를 정한 그놈들이 그년이 묵는 모텔로 향했다. 두 놈은 그년의 방 맞은편 방에 들어가고 그놈은 그년이 알려준 방으로 가서 벨을 누른다. 그놈이 방으로 들어가자 그년은 욕실을 가리킨다. “씻고 와.” “아침에 샤워했는데.” “하고 싶으면 씻고 와.” “알았어.” 그놈은 허겁지겁 욕실로 향했고, 그년은 이미 샤워를 마쳤는지 옷을 하나씩 벗고서 이불 속에 몸을 눕혔다. 잠시 후, 물소리가 멎고 욕실 문이 열리면서 수건을 손에 쥔 그놈이 욕실을 나선다. 그리고 그년이 누워있는 침대로 다가가 이불을 들추고 그년의 옆에 가만히 누웠다. “앗 차거!” “아 미안……. 내가 마음이 급해서.” 그놈이 그년을 안아오자 물방울을 덜 털어냈는지 차가 움에 비명을 지르자 그놈은 미안하다는 한 마디를 던지면서 그년을 안아 간다. 그리고 그놈은 혀를 내밀어 그년의 가슴을 희롱하기 시작했고, 혀가 지나가는 자리에서는 솜털이 뾰족하게 일어서면서 그년의 몸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그놈의 손은 엉덩이에서 숲이 우거진 그년의 샘으로 향하고, 그놈의 손에 전해진 느낌은 샘에서 흘러나온 물들로 이미 푹 젖어버린 그것이었다. “와~ 시발 벌써 푹 젖었네. 너 엄청 꼴렸었구나.” “응. 아까 너 만나고 나서부터 꼴렸었는데.” “바로 쑤셔도 되겠다.” “그래 빨리 쑤셔봐. 시원하게.” 그년의 말에 따라 그놈은 바로 좆 질을 시작하기 시작했다. 그놈의 엉덩이가 들썩이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그년의 손에는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고 퍼런 실핏줄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아~흑.” “좋아?” “…….” “시발 년아 좋냐?” “좋다 시발 놈아. 좀 더 팍팍 쑤셔봐. 아~항.” 그놈은 열심히 피스톤 운동을 하면서 한 손으로 가만히 휴대폰을 집어 들고 통화 버튼을 누른 후 휴대폰을 아래로 ‘툭’ 던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