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도 아침일찍부터 선영과 함께 가게안을 청소하고 있었다.
난 자꾸만 나도모르게 몇번이고 시계를 쳐다보았다.
"사모님 왜자꾸 시계를 쳐다보세요?"
"아..아냐 아무것도..."
왠지 모르지만 얼굴이 달아올랐다.
"좋은 아침..."
낮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며 그가 들어왔다.
난 어제처럼 그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여보였고 그는 인사대신 손을 흔들며 미소로 답했다.
어찌보면 무례해 보일수도 있겠으나 나는 그리 느끼지 않았다.
가슴깊숙한곳까지 환하게 만들어주는 미소였다.
그가 주방으로 들어가자 난 하던청소를 그만두고 눈치를 보며 그를 따라들어갔다.
"제가 뭘 도와드릴까요?"
"어제처럼 밥을 준비해주세요."
그는 어제 아침에 비해 한결부드럽게 나를 대했다.
난 밥을 준비하며 틈만나면 그를 힐끔 거리며 쳐다보았다.
행여 내가 잘못해 어제처럼 불벼락이라도 떨어질까 사실 겁도 났지만 그외에도 뭔가 다른 감정이 있었던것 같다.
그는 나의 존재를 아는지 모르는지 말한마디 없이 내게는 시선조차 주지않고 자신의 일에 몰두했다.
남자는 자신의 일에 열심일때 가장 아름다워 보인다고 했던가?
자신의 일에 열중하는 그가 아름다워보였다.
"이리 와 보세요."
그가 나를 불렀고 난 기다렸다는듯 그에게로 쪼르륵 달려갔다.
"생선 자르는 방법 가르쳐 드릴께요. 생선에 따라 전부 달라요.
우선 기본이 되는 평썰기는 이렇게 자신의 앞으로 당기며 오른쪽으로..."
그가 아침부터 말없이 바빴던건 빨리 준비를 해놓고 나를 가르쳐 주기 위함이었나 보다.
자신의 자리를 노린다는걸 알텐데도 그의 배려에 가슴한구석이 따스해 지는것 같았다.
그는 생선에따라 칼을 사용하는 방법을 내게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나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힘들었다.
나도모르게 그의 옆모습만 지켜보고 있었다.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한번 해보세요."
그는 내게 보기에도 무서운 칼을 내밀었고 난 그가 서있던 자리에 섰다.
"거기서 연습하고 계세요"
그는 내게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고 자신은 다른자리에서 다시 재료들을 준비하고 있었다.
내 마음 한 구석에서는 그가 어제처럼 내손을 잡고 다정하게 가르켜주길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가 모른채하고 자신의 일을 하자 못내 서운하기까지 했다.
초밥을 만든다는건 남편의 말처럼 그렇게 쉬운건 아닌것 같았다.
나도 어느샌가 그의 존재조차 잊어버리고 그가 가르쳐준것들에 빠져들고 있었다.
즐겁다.
이안에서 일어나는 모든일이 즐거웠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오자 손님들이 밀려들고 선영과 나 그리고 준규씨는
모두 자신들의 맡은일로 바빴다.
어설프지만 내가 만든 초밥이 손님들의 입안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꼈다.
서너시간이 정신없이 지나간것 같다.
"요리사 오빠...사모님 ...저 다녀올께요."
점심 손님들이 모두 나가자 선영은 어제처럼 외출을 하려했다.
그녀의 그한마디는 내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어제의 일들이 떠올랐고 묘한 느낌이 나를 사로잡았다.
"선영아 저녁전까지는 바쁘지 않으니까 천천히 와라..."
요리사 준규씨는 그렇게 말하고 나를 보며 살짝 미소를 지어보였다.
난 얼굴을 붉히며 어색하게 그를 향해 웃어보였다.
그는 저녁영업 준비중이라는 팻말을 가게앞에 걸고는 주방으로 돌아왔다.
"이리와봐요. 제가 초밥초 만드는법 가르쳐드릴께요."
그가 나의 손을 잡더니 가스레이지 앞으로 끌어당겼다.
난 순간 흠칫놀라며 손을 살짝 빼려다가 그에게 그대로 손을 맡긴채 따라갔다.
"초밥초는 식초 설탕 소금이 주재료인데 비율이 3:2:1 로하면 돼요.
냄비에 식초소금설탕을 넣은다음 다시마를 한쪽 넣고 약불에서 저어주세요.
절대 끓이면 안돼요. 식초가 다 날라가 버리니까요. "
난 그의 말에 따라 냄비에 재료를 넣고 약불에서 초밥초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내뒤에 서서 어께너머로 내가하는걸 지켜보고 있었다.
"소금과 설탕이 다 녹으면 레몬즙을 짜주세요."
난 그가시키는대로 초밥초에 레몬즙을 짜넣었다.
그의 한손이 나의 허리옆을 지나 앞으로 오더니 가스불을 껐다.
그의 팔뚝이 살짝 내허리를 스치고 지나가자 난 움찔거리며 한쪽으로 피했다.
아무일도 없었다는듯한 표정의 그를 보고 과민반응을 보여 무안했다.
"어디 잘만들어 졌는지 맛을 한번 볼까요?"
그는 작은 국자로 초밥초를 떠 검지손가락으로 즙을 찍더니 자신의 입안으로 가져갔다.
"음...그런대로 괜찮은것 같네요."
다시 그의 검지 손가락이 국자에 담긴 즙을 찍었다.
그리고 그손가락이 나의 얼굴가까이로 다가왔다.
"한번 맛보세요."
설마 그걸 내입으로 가져올줄은 몰랐다.
그의 입안으로 들어갔다 나온 손가락이다.
나는 그를 한번 올려다 보았다.
그의 표정은 너무도 태연했다.
그의 손가락이 가볍게 내입술을 건드리고 난 입술을 벌리고 말았다.
달짝 시큼한 맛과 함께 그의 손가락이 내입술사이로 밀려들어 왔다.
난 혀끝으로 그의 손끝에 묻은 즙을 핥아 먹었다.
그는 손가락 끝을 살짝 움직이며 내혀를 터치했다.
그리고는 "쪽"소리와 함께 그의 손가락이 내입술에서 빠져나갔다.
"어때요? 맛이.."
"잘 모르겠어요.."
"하긴 어떤맛이 제대로 된 맛인지 모르죠? 제대로 된 맛을 잘 기억해 둘 필요가 있어요."
그는 다시 손가락으로 즙을 찍더니 내입술로 가져왔고 난 다시 입술을 벌리고 있었다.